'인싸'들의 로맨스
참선비의 학문이란 치국안민에 근본적인 뜻이 있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국가재정을 넉넉하게 하며.
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당시를 평가하고 앞날을 설계하기에 너무나 힘들었겠지만.그나마 근대화를 위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이 지식인들과 백성들의 눈에는 단지 왕실을 위한 작업으로 비추었다.
강화도 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 물론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말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실효성이 없다.아무리 이웃 나라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왕비를 죽이고.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(半)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.
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.특히 근대화를 추진했던 지식인들은 시모노세키 조약 후 중국의 사신을 맞이했던 곳에 독립문을 세웠다.
성찰해야 할 역사적 이슈가 너무나 많다.
특별한 조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.특히 부패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한다며 온갖 개혁적인 저서를 남겼다는 점으로 보아도 두 분은 유사점이 많은 학자요 참선비였다.
율곡의 참선비론을 보자.참선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태평성대를 이룩할 통치자가 존재하고 있는가.
오랫동안 다산을 공부해 왔는데.바로 교체하기 어려운 군주이지만.